전통무술과 건강

전통무술과 건강: 2016.01.06 22:52 입력

필자는 대학교 재학당시 조용히 튀는 사람이었나보다. 시대에 유행하는 패션에 한껏 관심이 많을 수 있는 청춘의 시기에 오히려 담담한 무채색 생활한복을 휘날리며, 마치 바쁜 세상과는 거리를 둔 것처럼 유유자적 학내를 누비고 다녔으니 말이다. 거기에 검은 천으로 단단히 매듭지은 목검이라도 하나 어깨에 둘러 매고 수련터였던 잔디밭에 오를 때에는 왠지 몸이 가벼워지고 세상이 다 부럽지 않았다. 지나는 사람들은 그런 필자를 조금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렇다. 소위 전통무술을 익히느라 의도하지 않게 튀는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뭇 사내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황비홍을 꿈꾸었다는 것은 차치하고도, 의학의 길을 걷는 지금 돌이켜보면 무술을 접하고 매료될 수 밖에 없었던 과거는 자연스러움을 넘어 다행스럽고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당시엔 고전적으로 남자다움을 과시하고픈 본능도 작용했겠지만, 나를 이루고 있는 내몸으로 허공에 펼쳐대는 글과 그림에 스스로 매료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더 현란한 고급 기술을 익히려 노력했고, 마침내 내 몸으로 그것을 시연해 낼 수 있게 되었을 땐 무엇보다 큰 뿌듯함과 성취감을 가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창때의 허상으로 보일 수 있을지라도 말이다.   <o:p></o:p>  허나 의학을 좀 더 알게 되고 무술을 통해 몸을 알아감에 따라 젊은 시절 누렸던 나름의 풍류보다는 무술에 대한 근원적 고민이 점점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다. 과연 살생의 도구였던 전쟁기술인 무술은 과연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o:p></o:p>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무술을 연마한다. 크게 나눠보면 싸움 기술 습득, 스포츠, 건강, 과시나 자기만족, 나아가 마음수련까지 다양한 목표가 존재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고 했듯이 몸을 통해 마음을 수련할 수 있는 것 또한 무술의 큰 효용이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목표를 나누기 이전에, 무술은 가장 기본적으로 몸을 단련시킨다.    몸을 효과적으로 단련해서 가장 적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함이 무술의 기본적 존재 목표이다. 따라서 당연스레 무술을 잘 연마한 사람은 관절이 유연하고 탄력이 있으며 원기왕성해진다. 달리 말하면 건강해진다는 말이다.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함에서 시작된 무술을 통해 몸에 나타나는 기본적인 효과는 건강인 것이다.    근육과 뼈의 작동원리인 단순한 운동역학에 기반을 둔 현대 타격술과는 달리 전통무술(여기서는 특히 필자가 접한 내가권 위주의 전통무술을 이른다)은 신체 각부위와 연관 되는 오장육부와의 관계성을 중시한다. 그것이 바로 동양의학의 경근(經筋)이론이다. 큰 힘을 내서 누구와 겨뤄도 지지 않으려면 근과 골의 바탕이 되는 오장육부가 튼튼하여 그 기운이 각각 해당하는 근골에 원활히 전해져야한다는 이야기다. 오장육부가 튼튼하면 근골이 강건하고 또한 근골을 원활히 움직여주면 오장육부도 강건해진다는 말이다. 조금더 깊이 들어가면 이 오장육부의 기운을 통해 정신과 마음을 경근에 원활히 실어낼 수 있으면 상당히 높은 무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전통무술에는 신체의 작고 큰 관절을 풀어주는 도인법이 존재한다. 겉보기엔 무술을 하기 전에 몸을 푸는 단순한 준비운동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도인법에는 인체의 건강과 관련한 의학적 이론이 깊게 녹아있는 것이다. 건강을 목적으로 한다면 무술이전에 도인법만 꾸준히 하여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o:p></o:p>  또한 전통무술에는 고유의 보법이 존재한다. 좁은 의미에서 보법은 실전에서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발걸음과 큰 힘을 낼 수 있는 발의 자세 등을 지칭할 수 있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내 몸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고 조절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보법인 것이다.    하루도 걷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조들은 허투루 보낼 수 있는 일상에서 유사시 전쟁기술의 근간이 되는 보법을 시나브로 반복하며 익히게 함과 동시에, 일반인들이 몸을 강건하게 하는 방법을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몸을 단련하여 사람을 제압하는 무술과 몸을 바르게 다루어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의술이 각자의 목표이자 수단인 몸을 매개로 해서 만나는 지점인 것이다.  류광렬 한의사    <o:p></o:p>   <o:p></o:p>   <o:p></o:p>   <o:p></o:p>   <o:p></o:p>